프레더릭 매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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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레더릭 매켄지는 캐나다 퀘벡에서 태어난 언론인으로, 러일 전쟁과 일제강점기 한국의 상황을 취재하고 기록했다. 그는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한국과 만주를 여행했고,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항거하는 의병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는 일본의 한국 침략과 3.1 운동을 비판적으로 보도했으며, 저서 《대한제국의 비극》, 《한국의 독립운동》 등을 통해 한국의 독립운동을 알렸다. 2014년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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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매켄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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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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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프레더릭 아서 매켄지 |
원어 이름 | Frederick Arthur McKenzie |
출생일 | 1869년 |
출생지 | 퀘벡주, 캐나다 |
사망일 | 1931년 (62세) |
국적 | 캐나다 |
직업 | 언론인 |
경력 | |
상훈 | 2014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
2. 생애
캐나다 퀘벡주 출신의 언론인으로, 1900년 영국의 데일리 메일 기자로 활동을 시작했다.[13] 1904년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처음 대한제국을 방문한 이후[13]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아 일제의 침략 실상과 한국인의 저항을 취재했다. 특히 1907년 정미의병의 활동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으며,[7] 1919년에는 3·1 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7] 그는 《대한제국의 비극》(1908), 《한국의 독립운동》(1920)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한국의 현실을 국제 사회에 고발했다. 말년에는 미국 언론사 소속으로 활동하며 유럽 등지에서 강연했고,[7] 1931년 캐나다 자택에서 사망했다.
2. 1. 초기 생애
매켄지는 1869년 캐나다 퀘벡주에서 태어났다.[4] 그는 스스로를 '스코틀랜드계 캐나다인'으로 여겼으나, 외국에서는 편의상 영국인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4] 1900년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메일에 입사하여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13] 1904년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대한제국을 처음 방문했으며, 이때 일본 제국 육군의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러시아 제국을 거쳐 영국으로 돌아갔고, 1905년 자신의 경험을 기록한 《도쿄에서 트빌리시까지 - 검열 받지 않은 편지》를 출간했다.2. 2. 언론인 경력
캐나다 퀘벡주 출신으로, 1900년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에 입사하며[13]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1904년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대한제국을 처음 방문하여 일본 제국 육군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미국의 작가 잭 런던[12], 로버트 L. 던과 함께 한국과 만주를 여행했으며, 이들은 일본군 측에서 전쟁 초기 단계를 목격한 유일한 서방 언론인이었다.[5] 매켄지는 당시 일본 군인들의 교육 수준과 포로로 잡힌 러시아 장교들에 대한 대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그들의 인내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6] 이후 러시아 제국을 거쳐 영국으로 돌아간 뒤, 1905년 취재 기록을 모아 《도쿄에서 트빌리시까지 - 검열 받지 않은 편지》를 출간했다.
1906년 여름,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취재하기 위해 대한제국을 다시 방문하여 1907년 말까지 약 2년간 머물렀다.[7] 이 기간 동안 그는 1907년 7월 순종 황제의 즉위식, 일제 통감부의 대한제국 군대해산에 맞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의 활동,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토마스 베델의 추방 등을 기록했다.[7] 일본 측의 외국 언론인 활동 방해 시도에도 불구하고, 매켄지는 이천으로 가는 길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목격했으며, 충청북도 충주까지 직접 찾아가 의병들을 만났다.[8]

그는 한국 의병의 모습을 담은 유일한 사진을 남겼으며, 그들의 모습을 "반짝이는 눈과 미소"를 가진 애국심의 본보기라고 묘사했다.[8] 또한 1907년 출간한 저서 《베일을 벗은 동양》의 부록에는 한국인들이 일본의 통치에 반대하고 있음을 명시했다. 1908년에는 대한제국 멸망 과정과 그 이후의 일제 통치를 기록한 《대한제국의 비극》(The Tragedy of Korea)을 출간했다.[8]
1910년부터 1914년까지는 영국 일간지 런던 타임스에서 근무했다. 이후 일제강점기의 한국을 다시 방문하여 1919년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3·1 운동을 직접 목격했다. 특히 같은 해 4월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서 벌어진 제암리 학살 사건 현장을 방문하고, 이를 목격한 캐나다인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의 증언을 토대로 일본 제국의 학살 만행을 취재하여 세계에 알렸다.[7]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20년 《한국의 독립운동》(Korea's Fight For Freedom)을 출간했다.[7] 이 책에서 그는 3·1 운동에서 나타난 한국인들의 독립 정신을 기록했으며, 일본의 고문 방법을 상세히 묘사하고 3·1 운동이 "폭동이 아닌 시위"였음에도 일본 경찰이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르며 진압했음을 강조했다.[7]
1921년부터 1926년까지는 미국의 시카고 데일리 뉴스 소속으로 활동하며 유럽 각국에서 강연했다. 이 시기 그는 러시아의 볼셰비즘에도 관심을 가졌다. 《데일리 메일》의 강경한 반볼셰비즘 논조 때문에, 그는 이 연구를 위해 시카고 데일리 뉴스의 에드워드 프라이스 벨, 비버브룩 남작 및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R. D. 블룸필드와 협력했다. 이를 통해 1921년부터 1924년까지 소련에 머물며 개인적인 경험을 쌓았고, 이후 스톡홀름에 정착하여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를 자주 방문하며 러시아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1930년에는 이러한 경험과 조사를 바탕으로 러시아 볼셰비즘 시대의 종교 박해에 관한 책을 출판했으며, 서문에서 이 책이 "기록이자 항의이며 호소"라고 밝혔다.
1931년 캐나다 자택에서 사망했다. 2014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7]
2. 3. 사망
1921년에는 미국의 일간지인 데일리 뉴스로 이직하여 1926년까지 근무하면서 유럽 각국에서 강연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1931년 캐나다에 있는 자택에서 사망했다.3. 수상 및 서훈
4. 비판과 반론
한국의 비극'을 집필한 후, 일부 비평가들은 매켄지가 과장된 표현을 사용했고 그가 "반일"주의자라고 비난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 "어떤 사람도 일본인의 성격과 업적의 특정 측면에 대해 나만큼 호의적으로 글을 쓴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일본군과의 개인적인 관계는 나에게 개인적인 불만을 남기지 않았고, 많은 즐겁고 우호적인 기억을 남겼다."[7]
5. 저서
프레더릭 매켄지는 러일 전쟁 취재 이후에도 일본의 한반도 침략 상황을 알리기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1906년 여름부터 1907년 말까지 약 2년간 대한제국에 머물며 순종 황제의 즉위식, 의병 활동,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 추방 사건 등을 기록했다.[7] 일본 당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천으로 가는 길에 일본군의 만행을 목격했으며, 충청북도 충주에서는 직접 의병들을 만나 취재했다.[8] 이때 매켄지는 한국 의병의 모습을 담은 유일한 사진을 촬영했으며, 그들의 모습을 "반짝이는 눈과 미소"를 지닌 애국심의 본보기로 묘사했다.[8]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1908년 ''대한제국의 비극'' (The Tragedy of Korea)을 출판하여 대한제국이 국권을 상실하고 일본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된 과정을 고발했다.[8] 이후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매켄지는 ''한국의 독립운동'' (Korea's Fight For Freedom)을 저술하여 일본 통치에 맞선 한국인들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렸다. 이 책에서 그는 일본의 잔혹한 고문 실태를 상세히 폭로하고, 3·1 운동이 평화적인 시위였음에도 일본 경찰이 무자비하게 탄압했음을 강조했다.[7]
=== 주요 저서 목록 ===
- ''Sober by Act of Parliament'' (국회 법령에 의한 절제), 1894
- ''Paul Kruger: His Life Story'' (폴 크루거: 그의 생애 이야기), 1899
- "The Worst Street in London" (런던 최악의 거리), ''데일리 메일'', 1901년 7월 16일
- ''The American Invaders'' (미국 침략자들), 1902
- ''From Tokyo to Tiflis: Uncensored Letters from the War'' (도쿄에서 티플리스까지: 전쟁으로부터의 검열되지 않은 편지), 1905
- ''Japan's Colonial Policy in Korea'' (한국에서의 일본의 식민 정책), 1906
- ''The Unveiled East'' (가려지지 않은 동쪽), 런던, 1907
- ''대한제국의 비극'' (The Tragedy of Korea), 1908
- * ''대한제국의 비극'' (옮긴이: 신복룡, 출판사: 집문당)
- ''Peace Conference - The Claim of the Korean People and National Petition'' (평화 회의 - 한국 국민의 주장과 국민 청원), 1919년 4월
- ''Korea's Fight for Freedom'' (한국의 자유를 위한 투쟁), 1920 (전자책)
- * ''한국의 독립운동'' (옮긴이: 신복룡, 출판사: 집문당)
- ''Pussyfoot Johnson: Crusader, Reformer, a Man Among Men'' (푸시풋 존슨: 십자군, 개혁가, 인간 중의 한 사람), 1920 (윌리엄 E. 존슨에 관하여)
- ''The Mystery of the Daily Mail, 1896–1921'' (데일리 메일의 미스터리, 1896–1921), 1921
- ''[https://books.google.com/books?id=aUpBAAAAIAAJ Russia Before Dawn]'' (새벽 전의 러시아), 1923
- ''Russia's Calvary: The Tellowship Story of the Persecution of Religion Under Bolshevism'' (러시아의 십자가 처형: 볼셰비즘 하의 종교 박해에 대한 전체 이야기), 1930
6. 한국과의 관계
1904년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대한제국을 처음 방문하였고, 이때 일본 제국 육군의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의 작가 잭 런던[12], 로버트 L. 던과 함께 한국과 만주를 여행했으며, 이들은 일본군 측에서 전쟁 초기 단계를 목격한 유일한 서방 언론인이었다.[5] 매켄지는 당시 일본 군인들의 규율과 러시아군 포로에 대한 대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6]
1906년 대한제국을 다시 방문하여 1907년 말까지 약 2년간 머물렀다.[7] 이 시기 그는 통감부의 대한제국 군대해산 명령에 항의하여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정미의병의 활동을 직접 취재하고 사진으로 남겼다. 특히 일본 당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이천으로 가는 길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목격했으며, 충청북도 충주에서는 의병 부대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이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의병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8] 매켄지는 의병들의 모습을 "반짝이는 눈과 미소"를 지닌 애국심의 본보기로 묘사했다.[8] 또한, 1907년 순종 황제의 즉위식과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의 추방 사건도 기록했다.[7] 같은 해 출판한 저서 《베일을 벗은 동양》의 부록에서는 한국인이 일본의 통치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1908년에는 대한제국이 국권을 상실해가는 과정과 일본의 침략상을 기록한 《대한제국의 비극》(The Tragedy of Korea)을 출판했다.[8]
이후 일제강점기를 맞은 한국을 다시 방문하여 1919년 3·1 운동을 목격했다. 그는 특히 경기도 화성시에서 발생한 제암리 학살 사건에 주목하여, 현장을 직접 확인한 캐나다인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의 증언을 토대로 일본 제국 군경이 저지른 학살의 진상을 국제 사회에 폭로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1920년에는 《한국의 독립운동》(Korea's Fight For Freedom)을 집필하여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3·1 운동 당시 한국인들이 보여준 독립 의지를 기록하고, 일본의 잔혹한 고문 방법을 상세히 묘사했다. 또한 3·1 운동이 "폭동이 아닌 시위"였음에도 일본 경찰이 무자비하게 진압했음을 강조했다.[7]
2014년 대한민국 정부는 프레더릭 매켄지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7]
참조
[1]
웹사이트
Gusts of Popular Feeling
http://populargusts.[...]
2010-11-13
[2]
서적
Sober by Act of Parliament
https://archive.org/[...]
Swan Sonnenschein & Co
[3]
서적
The Colonial Policy of Japan in Korea
https://archive.org/[...]
[4]
서적
Korea's Fight for Freedom
https://archive.org/[...]
Fleming H. Revell Co.
[5]
간행물
Frederick Arthur McKenzie on the Japanese Seizure of Korea
https://www.questia.[...]
2014-01-01
[6]
간행물
Becoming an Honorary Civilized Nation: Remaking Japan's Military Image during the Russo-Japanese War, 1904-1905
2001-09-01
[7]
웹사이트
McKenzie, journalist who delved into Korean justice
http://www.koreahera[...]
2020-08-25
[8]
웹사이트
Immortalizing 'righteous armies' through photos - Frederick A. Mackenzie
http://www.korea.net[...]
2020-08-25
[9]
웹사이트
The Worst Street in London
http://www.jacktheri[...]
2010-11-13
[10]
뉴스
A Life of Crime
http://paperspast.na[...]
2010-11-13
[11]
뉴스
Is Japan Out to Get Us?
https://query.nytime[...]
2010-11-13
[12]
서적
The Russian Crucifixion F A MacKenzie
http://archive.org/d[...]
1930-03-01
[13]
서적
The Colonial Policy of Japan in Korea
https://archiv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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